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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인 우리가 왜 당연한 한국 민담의 '권선징악'을 의심하기 시작했는지, 대대로 내려오던 여성의 미덕에 왜 의문을 품기 시작했는지 말해준다.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당연하게 배웠던 단군설화의 웅녀로 시작된 한국민담까지 뒤틀면서 태초부터 부정당한 한국여성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에 중점을 맞춘다. 

 

신화와 설화, 민담은 그 나라의 문화가 녹아있으며 국가의 근본은 건국신화이다. 그러나 전세계의 건국신화는 남성들의 손을 거쳐 내려오면서 입맛에 맞게 불평등하게 기록되어 여성들에게는 순종을 강요하는 국가관이 만들어졌다.

또 전세계 구전민담들의 공통점은 다듬어지지 않고 자극적이며 잔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틀을 벗어난 여성에게, 욕망을 가지는 여성에게, 남성을 따르지 않는 여성에게 더더욱 끔찍하다.

동화속 남성들은 잘못을 하면 스리슬쩍 빠지거나 용서받거나 도망쳐사는 정도이나 남성들이 정한 틀을 벗어난 여성들은 젓갈에 담궈지거나 불로 달군 신발을 신으며 죽을때까지 춤을 추는 평생을 고통받고 끔찍하게 난도질당해야했다. 또 외모가 뛰어나지 못하고 가족에 편입되지 못한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하는 핍박은 어떤가, 신데렐라와 콩쥐의 계모와 이복자매들은 다 못생겼으며 산속에 숨어 사는 여성은 구미호가 되고 간을 빼먹는다며 모두가 혐오한다. 낙인찍힌 서양의 늑대인간과 마녀의 존재처럼 나쁘기만하고 없애야할 존재일뿐이다. 그들이 어떤 노력으로 사회에 살아가려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구미호와 마녀와 늑대인간이기만 하면 죽여도 면죄부를 받는다.

우리는 사회가 지정한 역할에서 벗어나거나 정해진 신분이 약하다면 받게 되는 벌을 권선징악 따위라고 세뇌되어 배웠다. 착한 요조숙녀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무의식중에 가르친다. 어렸을 적 동화책으로 읽고 구현동화로 들었던 한국의 민담들은 진부하고 뻔했다.

내게 한국의 민담이 진부하고 뻔했던건 한국여성으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잘못되었으니 뭔가를 하지 말아야한다는 같잖은 충고와 구속으로 이뤄진 한국 민담이 재미있겠나, 순결을 지키고 꿋꿋히 역경을 이겨내면 (겨우) 사또 정도 되는 멋진? 남자가 너의 인생을 구원해준다는데. 세상을 미워하지말고 이 남성 체계에 편입되면 찬양받는다는걸 받아들이라는데 즐거울리가? 여성에게는 홍길동전조차 없고 그 홍길동놈도 결국 첩을 들이고 그 체계를 재생산해내는데 한국 민담이 재미없다.

 

이런면에서 페미니즘으로다시쓰는옛이야기는 분석적이고 깊이 있으며 백마탄 왕자는 없는 한국의 민담 정서까지 잘 파악한 책이었다. 사실 이 책에 다시 쓴 한국 옛 이야기'만 있다면 자칫 유치해지고 지루해질 수 있었으나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을 넣음으로써 구성과 재미가 한층 풍부해졌다. 난 다시쓴 옛이야기보다는 왜 다시써야 했는가? 왜 여성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는가? 옛이야기를 재생산하게 된 작가들의 뒷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옛이야기라는 주제에 맞춘 서책 디자인도 멋있다. 책이 활짝 펴져서 가독성도 좋음^^

 

특히 '홍길영전'은 내가 아는 허균의 홍길동전을 바꾼 줄 알고 읽다가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원작 다시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창조인데?" 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가 이게 충청남도의 설화인 '오누이 힘겨루기'의 변형인 걸 알고 놀랐다. 심지어 그 이야기를 딴 바위가 있었다는 것, 누이의 이름은 지워졌다는 것까지 몰랐는데 이것을 조사하여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들의 깊은 식견에 감탄했다.

 

엄마가 딸이 아닌 아들을 선택하여 죽게한다는 <오누이의 힘겨루기> 민담은 지금까지도 한국여성들을 옥죄는 굴레이다. 한국에서 딸은 엄마를 짝사랑하고 엄마는 아들을 짝사랑한다. 여성으로 평생 차별당하고 자신을 부정당했던 엄마는 아들을 낳은걸로 자신을 인정받게해준 아들을 좋아하고 모든걸 몰아주며 딸을 차별하다 나중에 아들에게서 내팽개쳐서 딸에게서 보상받으려한다. 딸을 착취하여 아들을 먹여살리다가 딸과 연이 끊어지면 며느리에게 그 증오가 옮겨간다.  

 

흔히 고부갈등이나 엄마와 딸로만 치부되는 여적여 구도는 언론에 나오고 어느쪽이든 여성은 손가락질받지만 거기서 혜택받고 아무 해결도 하지 않으려는 한국남성 아들, 아버지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홍길동 바위는 그렇게 한국 사회에 아직도 굳건하다. 여성의 이름은 지우고, 남성은 혐오에서 자유로운 한국사회. 그렇기에 작가의 이야기도 홍길영전도 우리 뇌리에 깊게 남는다.

 

우리는 의심하기 시작했고 다시 만들어 나갈것이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여성이라면 곱씹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D